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Km
한반도 동쪽 끝자락에 솓아오른 두개의 바위섬 독도는 기록에 의하면 옛부터 우리 땅이었다.
그런데 일본 시마네현을 중심으로 하는 우익인사들은 한국이 독도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837년 일본의 에도막부는 전국 해안가에 경고판을 내걸었다.
조선땅 울릉도를 다녀온 하치에몬이란 자를 처형했으며 모든 해외로의 도해는 금지한다는 엄중한 경고문이었다.
막부에 의해 처형당한 하치에몬은 근대에 이르러 영웅으로 추대되더니
최근 시마네현에서는 독도 실효지배의 역사 근거로 재해석된다.
우리에게 이름조차 생소한 아이즈야 하치에몬.
일본 에도 막부 시대의 뱃사람이었습니다.
19세기 막부가 금지했던 울릉도까지 갔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최근들어서 일방적인 독도영유권 주장을 펼치고 있는
일본 시마네 현에서 중요한 역사 인물로 부각되고있습니다.
일본 시마네현의 일부 우익 인사들이 하치에몬의 행적에서 말하고자 했던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지난 2005년 다케시마 조례안을 통과시킨 일본 시마네현.
현청 앞은 물론 시내 곳곳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광고판을 설치했다.
다케시마의 날(일본어: 竹島の日)은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일본 제국 시마네 현으로 편입 고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2005년 3월 16일에 시마네 현이 지정한 날이다.
2005년 1월 14일, 시마네 현 의원들은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을 제정하여
2월 23일에 현 의회에 상정해 3월 16일 가결했다.
출처- 위키백과
시마네현은 조례안 제정이후 조직적으로 움직여왔다.
우선 현청 안에 꽤 넓은 규모의 독도 연구소를 열었다.
상주 직원까지 배치해서 한일 양국의 독도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데
특히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것은 일본에 유리한 역사자료나 인물을 찾아내고 홍보하는 일이다.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에 비추어서 독도는 일본의 영토라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지난해부터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독도문제를 배우는 강좌도 진행하고 있다.
매번 주제는 달라도 대표 우익학자 시모죠 마사오 교수의 강의는 빠지질 않는다.
한국의 영토문제를 표적으로 삼은 우익의 주장을 시민들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듯 하다.
지난해 12월 7번째 강좌의 주제는 에도막부시대의 인물 하치에몬 이었다.
170년전 막부시대의 인물이 독도 강좌에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뜻밖에 시마네현 관계자는 하치에몬을 독도 실효지배의 근거로 내세웠다.
하치에몬은 지난 7,80년 사이 시마네현의 향토인물로 재조명 되었다.
지역 방송이나 시민 창작극을 통해서 그는 향토 하마다를 위해 힘쓴 사람으로 그려져 왔다.
시마네현 하마다 항구에는 하치에몬의 송덕비가 있다.
송덕비가 세워진 시기는 1935년.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정책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비문의 내용에는 아시아 공영으로 포장된 일본의 팽창 정책이 숨겨져 있다.
"호걸 하치에몬 독도부터 남양에 이르렀다."
독도와 남양은 당시 일본이 식민 지배한 섬들이었다.
막부의 쇄국정책에도 불구하고 일본 바깥 세상으로 항해했던자.
시대에 따라 그에대한 평가는 반전 되었다.
그렇다면 현제의 시마네현에서는 왜 하치에몬을 주목하게 되었을까?
그가 1830년대 중반 울릉도와 독도를 다녀왔다는 역사 기록 때문이다.
두 섬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서 맑은 날씨에는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울릉도와 독도의 가까움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린 예로부터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써 여겨왔습니다.
그러니까 울릉도라 함은 울릉도 뿐만아니라 그 주변의 작은 섬까지 포함하는 것이다라고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울릉도에서 바라본 독도의 모습
독도에서 바라본 울릉도의 모습
당시 등대도 딱히 첨단 항법기술도 없었던 시대에
이 정도 가까운 거리의 두 섬을 다른 나라의 영토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일본의 일부 우익학자들은 하치에몬은 울릉도에가서 처형당한 것이지
독도에 갔었더라면 괜찮았다라고 얘기하며 두 섬을 분리해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치에몬은 과연 독도를 어떻해 인식하고 있었을까요?
그가 재판 과정에서 직접했다는 진술내용을 통해서 당시 막부시대 일본인들의 영토 인식을 추적해 보겠습니다.
19세기말 막부는 경고판을 내걸고 해안가 촌락에 빠짐없이 알릴것을 명했다.
"이번에 하치에몬이 울릉도에 도해한 사건으로 엄벌에 처해졌다. 향후 모든 외국으로의 도해를 엄금한다."
도해를 감행했던 하치에몬과 도해를 같이 모의했던 하마다 가신은 처형당했다.
가신 가운데 둘은 할복으로 죄를 대신했고 막부 최고위직까지 올랐던 하마다번의 영주집안은 몰락하고 만다.
하치에몬 사건은 당시 정치판도를 바꾼 엄청난 사건으로 기록된다.
하치에몬의 주요 활동 지역은 현제의 시마네현 하마다 항이었다.
하마다시 항토 자료관에는 그가 직접 사용했었다는 유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그의 숙부를 거쳐 집안 대대로 거쳐오던 것을 이곳에 기증해 전시하고 있다.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유품관리에 특별히 신경써온 것으로 보인다.
하치에몬은 운송선 한척을 가지고 지역산물을 에도로 날랐던 뱃사람이자 상인이었다.
대대로 어업에 종사하였으니 먼 바다에 나가는것이 이익이 된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하치에몬이 새로 배까지 만들어가며 울릉도 독도 도해를 계획한 것은 1830년대 초의 일이다.
도쿄대 부속 도서관에는 하치에몬의 울릉도 도해에 관한 1급 사료가 보관되있다.
울릉도도해일건기는 1836년 체포된 하치에몬이 직접 진술했던 막부의 재판 기록이다.
기록속에는 도해 계획과 과정이 상세히 담겨있다.
하치에몬은 울릉도, 독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울릉도와 해상 7,8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송도(독도)가 있는데
울릉도, 독도 모두 빈 섬이라고 생각되므로 이대로 두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초목을 베고 어업을 하며 저의 이익이 될 뿐 아니라 막대한 국익이 될 것입니다."
그는 당시 막부의 대신이었던 하마다 영주에게 울릉도, 독도 도해를 허가해달라고 요청했다.
도해는 허락되지 않았다.
죽도(울릉도)는 일본의 땅이 아니기 때문에 도해계획을 취소하라는 것이었다.
하치에몬과 하마다의 가신은 편법을 모의했다.
"송도(독도)를 간다는 명목으로 죽도(울릉도) 도해를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바로 이 진술이 문제가 되었다.
우익학자들은 이것을 근거로 당시 독도는 조선의 영토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막부가 내걸었던 200년전 경고판을 직접 확인해 보았다.
가로 1m 세로 50Cm 크기의 경고판은 현제 하마다 향토자료관에 보관되어 있다.
막부는 전국 법령에 해당하는 경고판을 통해서 도해 금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자국민들에게 전하려 했다.
경고판에는 죽도(울릉도)를 비롯한 해외 도해를 일체 금한다고 쓰여져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을 과연 울릉도 도해 금지로만 해석할 수 있을까?
당시 막부는 울릉도 독도를 어떻해 인식하고 있었을까?
하치에몬의 진술 기록을 보면 애초에 도해 허가를 신청하려 할 떄 울릉도, 독도를 함께 언급했다.
이는 두 섬 모두 외국 즉, 조선으로 인식한 증거가 아닐까?
하치에몬이 독도에 관해 진술했던 내용에는
"독도 근처에 도착해 배 안에서 보니 매우 작은 섬으로 나무도 거의 없었다.
내리지 않고 그대로 항해해 울릉도에 도착했다."
에도시대 일본인들은 독도를 어떻해 인식되었을까?
1690년대 말 안용복으로 인해 영토 문제가 붉어지자 막부는 돗토리번에 사실관계를 묻는다.
돗토리번은 울릉도, 독도는 일본의 부속섬이 아니라고 답했다.
에도시대 독도에 대한 인식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자료는 다름아닌 하치에몬의 진술 기록속에 있었다.
울릉도도해일건기는 막부의 재판기록으로 일본에서도 중요한 사료로 취급된다.
끝부분에 첨부된 지도는 하치에몬이 직접 그렸다.
지도는 간략하면서도 명료하다.
한반도와 울릉도, 독도는 같은 붉은색으로 칠해졌다.
반연 오키섬과 일본 영토는 흰색이다.
재판 당시 지도는 하치에몬의 고향인 하마다에서도 발견된다.
하마다 시립도서관에 보관되있는 조선죽도도항시말기.
하치에몬의 도해에서부터 사형까지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시말기의 지도는 조금 더 상세하다.
일본 쪽에서 독도, 울릉도의 거리까지 표시되어 있는데
역시 한반도와 울릉도, 독도는 붉은색이고 일본은 흰색이다.
1785년 에도시대 실학자인 하야시 시헤이가 그린 삼국접양지도.
이 지도 역시 조선과 일본을 다른 색으로 그리고있다.
조선과 일본 영토를 서로 다른 색으로 구분한 지도 재작법이 하치에몬의 지도와 일치한다.
하치에몬의 사형이후 독도는 일본인들에게 금단의 땅이 됬음을 경고판과 지도는 분명히 말해주고있다.
일본 시마네현에서 가장 가까운 오키섬까지 거리는 약 80Km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독도까지 직선거리로 220Km입니다.
19세기 사람 하치에몬에게 독도는 얼마나 먼 바다의 섬이었던 것일까요?
시마네현의 하마다 항을 출발한 것이 6월15일. 독도를 지나쳐서 울릉도에 도착한 것은 7월 21일 이었다고 진술했습니다.
한달이 넘게 걸린것입니다.
물론 바다의 날씨가 좋지않아 중간에 쉬기도 했지만
일본에서 울릉도와 독도는 당시 그만큼 먼 바다의 섬이었던 것입니다.
하치에몬은 막부에 도해 허가를 신청하면서 울릉도와 독도를 함께 언급했습니다.
그것은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영토이며, 독도는 울릉도와 가까운 섬.
즉, 부속도서였다는것을 알고 있었기 떄문이 아니었을까요?
'독도 역사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증 자료로 본 독도는 우리땅 (0) | 2018.07.08 |
|---|---|
| 독도가 만약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간다면? (0) | 2018.07.08 |
| 독도는 조선의 영토다. 안용복에서 칙령 제41호. (0) | 2018.07.08 |
| 日서 태어나 韓귀화…위안부·독도연구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0) | 2018.07.04 |
| 일본정부 독도 강제 펀입 (0) | 2018.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