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역사 자료

역사로 본 독도영유권 문제, 일본의 주장 Vs 한국의 주장

독도지킴이 최진호입니다 2018. 7. 10. 14:50
역사로 본 독도영유권 문제, 일본의 주장 Vs 한국의 주장 역사

2012. 8. 31. 19:17

독도는 당연히 한국 땅인 것 같은데, 왜 일본과 우리는 독도에 관해 해방 후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지 그 원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 최대한 일본의 입장에서 독도를 바라보기로 했다. 과연 어떤 근거로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기는지 살펴보자.

 

역사적 분쟁의 가장 큰 원인은 울릉도에 포함된 부속 섬이 독도를 제외하고도 2개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독도 문제에 대해 얘기할 때 총 4개의 섬을 생각해야 한다. 

 

1. 울릉도(鬱陵島)   2. 죽도(竹島)   3. 관음도(觀音島)   4. 독도(獨島)

 





 

물론 울릉도에는 독도, 죽도, 관음도를 제외하고도 40여 개의 작은 섬들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이 4개의 섬이다.

이 4개의 섬의 명칭이 역사 책에서 문제가 된다. 어떤 때는 우산도(于山島)가 울릉도를 뜻할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독도를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이 일본이 조선은 독도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펴는 근거로서 사용된다.

 

■ 역사적 기록 

 

1.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十三年夏六月 于山國歸服 歲以土宜為貢 于山國在溟州正東海島 或名欝陵島 地方一百里]

 

[13(512) 여름 6,우산국이 귀순하여 매년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기로 하였다. 우산국은 명주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인데, 울릉도라고도 한다.]

 

독도 영유권을 확립한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단지 울릉도(여기서 우산도는 울릉도가 된다.)만 언급된다. 물론 한국의 주장인 울릉도와 독도는 항상 한 묶음으로 취급했다라는 것이 설득력이 있지만 일본을 설득할 수는 없을 듯하다.

 

2. 고려사(高麗史, 1451)

[一云 于山武陵本二島相距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한국 주장

[우산, 무릉 두 섬은 서로 멀지 않아 날씨가 좋으면 서로 볼 수 있다.]

위의 해석을 따르면 우산, 무릉은 한국 측에서는 독도와 울릉도로 보게 된다.

 

일본의 주장

[ 이 글 원문의 주어는 울진현(지금의 울진군)이기 때문에 '울진현에서 두 섬을 바라보았을 때 날씨가 좋으면 볼 수 있다' 라고 해석해야 한다.]

 

일본의 해석을 따르면 우산, 무릉울릉도와 죽도로 해석해야 한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87.4Km 임에도 1년에 40일 정도 볼 수 있는데  울릉도와 거리가 130Km인 울진에서 울릉도를 볼 수 있을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과거에는 볼 수 있었다는 얘기도 있어, 이것도 그냥 넘어 가기로 하자.

 






출처: 역사스페셜(66) 독도는조선의 영토다 안용복에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까지(2011.05.05.)


 

3. 세종실록 지리지 강원도 삼척 도호부 울진현 (1454)

[于山武陵二島在縣正東海中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則可望見 新羅時 稱于山國 一云鬱陵島 地方百里]

 





 


한국의 주장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2섬이 현의 정동(正東) 해중(海中)에 있다.2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 우산국(于山國), 또는 울릉도(鬱陵島)라 하였는데, 지방(地方)1백 리이며]

  

고려사(高麗史, 1451)에서 일본에게 주어가 다르다는 반론의 여지를 준 문장과 달리 세종실록 지리지(1454)에 나온 문장은 확실히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2섬이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여기서 우산(于山)과 무릉(武陵)울릉도와 독도를 뜻하게 된다.

 

일본의 주장

고려사(高麗史, 1451)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주어는 울진이라고 보고 우산과 무릉울릉도와 죽도를 말한다는 주장이 있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1486)에서 우산도가 왼쪽에 있는 것을 근거로 울릉도가 원래 하나인데 이름이 우산, 무릉 두개이다 보니 지도 만드는 사람이 하나의 섬을 두개로 착각했다는 일도이명설(一島二名說)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일본의 주장이 상당히 억지스럽다고 느껴진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1486) 

일단 날씨가 맑으면 볼 수 있다는 섬은 죽도가 될 수 없다. 울릉도에서 너무 가까워 날씨가 흐려도 보이기 때문이다. 

일도이명설(一島二名說) 고려와 조선 학자들을 너무 우습게 보는 설이다. 어떻게 몇백 년 동안 동일하게 하나의 섬을 2개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인가? 확실히 세종실록 지리지는 독도 영유권이 조선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울릉도에서 그냥 보이는 죽도(竹島)

 



4. 안용복(?~?)의 활약

세종실록 지리지에서 독도가 한국 영토 임을 나타내지만 일본의 반박할 거리가 있었던 것에 비해 안용복의 활약에 대해서는 일본은 반박할 근거가 없다.










 


 

안용복이 일본에 제시한 조선팔도지도 (시마네현 자료)

 

원문: [此道中竹道松島有之]

강원도(江原道)라는 한자 밑에 울릉도와 독도의 일본식 명칭인 죽도(竹島)와 송도(松島)가 분명히 쓰여져 있다. 한국의 역사서가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이 명확치 않은 것에 비해 일본은 과거에 울릉도 = 죽도, 독도 = 송도 라는 인식이 명확했으므로 이 자료는 일본이 완벽하게 반박하기 힘든 자료이다.

 








안용복과 관련된 일본의 다른 자료에서도 우산도(于山島) = 송도(松島) = 독도(獨島)라는 한국의 주장이 맞다는 것을 증명

 

현재 명칭

울릉도(鬱陵島)

한국

일본

죽도(竹島)

관음도(觀音島)

과거 명칭

독도(獨島)

죽도(竹島)

대한민국

울릉도(鬱陵島)

우산도(于山島)

무릉도(武陵島)

우릉도(羽陵島)

독도(獨島)

석도(石島)

무릉도(武陵島) · 삼봉도(三峰島)

우산도(于山島) · 자산도(子山島)

 

 

일본

죽도(竹島)

송도(松島)

 

 

 







안용복과 만난 무라카미 가문의 문서











 

안용복(?~?) 사건 이후 울릉도 도해(渡海)금지령(1698)을 내린 일본의 막부는 울릉도에 갔다는 이유로 뱃사람 하치에몬(八右衛門)을 처형(1836) 하는데 이 때 사용된 재판 기록에 있는 지도(하치에몬이 직접 그린 지도)는 독도가 분명히 조선 영토로 빨간 색깔로 표시되어 있다.

  








하치에몬 처형(1836)을 기록한 다른 문서의 지도에도 독도는 조선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5. 대한제국 칙령 제41호(1900) 

2: 군청(郡廳) 위치(位置) 태하동(台霞洞)으로 정()하고 구역(區域) 울릉전도(鬱陵全島)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管轄)할 ()









한국의 주장

석도(石島)는 독도(獨島)를 뜻한다.

 

일본의 주장

석도(石島)는 관음도(觀音島)를 뜻한다.

 

사실 대한제국 칙령이 가장 중요한 문서 임에도 안타깝게 울릉도, 죽도, 석도 이렇게 3개 섬만 적혀 있다. 석도가 관음도라는 일본의 주장이 한국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지만 어쨌든 꼭 석도(石島)가 독도(獨島)라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없어 보인다. 돌섬 = 독섬 = 석도, 독도 라는 설만이 있다.

 

6. 시마네현(島根縣), 독도를 강제 편입(1905)









 

7. 샌프란시스코 조약(1951.09.)

 








 

출처: 그것이 알고 싶다 681회(2008.08.16.)

일본의 주장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독도가 빠져있다는 것을 일본은 주요 논리로 삼는다.

 

한국외대 이장희 법대 교수

총 9번 조약의 내용이 바뀌는데 첫 초안부터 5번까지는 조약에 독도가 포함되었으나,

6번째 독도가 일본의 소유라고 변경

다시 7, 8, 9번째는 현재와 같이 아무 언급이 없게 되었다. (일본의 정치 고문인 윌리엄 시볼드(1901~1980)의 로비 결과로 판단됨)

 

려해연구소 김영구 연구소장

아시아에서는 미국이 그때 당시 공산군이 쳐들어왔기 때문에 일본을 패전국가로 취급한 게 아니고 파트너로 취급했다.

그래서 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라는 것은 패전국에게 하나도 전쟁 책임을 묻지 않은 평화조약이 되었다.

 

8. 러스크 서한(1951.07.)










 데이비드 딘 러스크(1909~1994)

 

출처: http://hiyukiasa645.blog.me/150131231658

러스크 서한 원문 내용

or final renunciation of sovereignty by Japan over the areas dealt with in the Declaration. As regards the island of Dokdo, otherwise known as Takeshima or Liancourt Rocks, this normally uninhabited rock formation was according to our information never treated as part of Korea and, since about 1905, has been under the jurisdiction of the Oki Islands Branch Office of Shimane Prefecture of Japan. The island does not appear ever before to have been claimed by Korea. It is understood that the Korean Government's request that "Parangdo" be included among the islands named in the treaty as having been renounced by Japan has been withdrawn.

 

또는 최종적으로 주권을 포기했다고 하는 이론을 평화 조약에서 채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독도, 다케시마, 혹은 리앙쿠르 암()으로서 알려져 있는 섬에 대하여, 우리 측의 정보에 의하면, 평상시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이 암초는, 한국의 일부로서 취급되었던 적은 전혀 없으며, 1905년경부터, 일본의 시마네 현 오키 도청(島廳)의 관할하에 있었습니다. 이 섬에 대하여, 한국에서 지금까지 주권을 주장한 적이 있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이어도(파랑도)"가 본 조약으로 일본에 의해 포기되는 섬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는 한국 정부의 요구는 취하되었다고 이해합니다.

 

해석

양유찬(1897~1975) 주미한국대사가 미합중국 정부에게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의 일본이 포기할 영토 목록에 독도를 넣어 달라고 요청

하지만 극동담당 미국 국무 차관보 딘 러스크는 러스크 서한으로 회신하면서 그 요청을 거부

 

한국 주장  출처: http://blog.naver.com/saskian/40142261165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러스크 서한은 일본의 영유권 주장에 빌미를 준 사건이다.

미국은 독도를 일본에 넘기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건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그런 미국의 의도로 러스크 서한에서는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했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도 결국 독도를 빼버리고 말았다.

 

일본의 독도 망언, 미국도 책임 있다: http://blog.naver.com/saskian/40151414760

 

만약 이대로 애매하게 일이 지속되었다면 독도는 일본 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6.25 전쟁 때 있으나 마나 했던 이승만 대통령이 여기서는 제 구실을 한다.

 

8. 이승만 라인(평화선, 1952.01.) - 해양 주권 선언

 






맥아더 라인(1945.09~1952.04.)

-맥아더가 일본 주변에 선포한 해역선(海域線),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발효와 함께 사라짐

 

이승만 라인(1952.01.~1965.06.)

-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로 인해 맥아더 라인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하여 이승만 대통령은 독단적으로 선을 그음. 독도를 이승만 라인 안에 넣은 것에 일본이 가장 크게 반발했고, 미국 영국 대만 등도 역시 비판함.(일부 인터넷에서 연합국의 승인으로 이승만 라인을 발표했다고 얘기하나 분명히 연합국은 반대했다. 특히 미국은 인정할 수 없다고 이승만에게 통보했다.) 

하지만 9월에 UN 사령관인 클라크가 북한의 해상 침투를 방위할 목적으로 클라크 라인을 그었는데, 이 선이 이승만 라인과 거의 일치하여 평화선 선포를 간접적으로 지원한다. 일본은 감히 클라크 라인은 침범하지 못했다. 이승만 라인은 한일조약 체결 후에 폐지된다.

(백과사전과 인터넷에선 클라크 라인과 이승만 라인이 거의 일치한다고 나오는데 왜 이 지도에는 클라크 라인에 독도와 울릉도가 빠져 있지?? )

 

클라크 라인(1952.09.~1953.07.)

-UN 사령관인 클라크가 북한의 해상 침투를 방위할 목적으로 클라크 라인 선포함. 1953년 7월 휴전 협정과 함께 사라짐. 그 후 일본 어선의 한국 영해 침입이 급격이 늘어남.

맥아더라인 [ MacArthur Line ]

[출처] 맥아더라인 | 두산백과








 

 

미 국무부 작성문서(1954)






 


 

내용: [딘 러스크의 편재 내용에 의해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리앙쿠르 섬(독도)을 일본에게 넘긴다는 법적인 결론을 수반하느냐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 된다.]

 

이승만 라인으로 한국이 확실히 독도 영유권 수호 의지를 나타내자 미국의 이후 문서에서는 러스크 서한이 법적인 결론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9. 홍순칠(1929~1986) - 독도의용수비대(1953.04.~1956.12.)

 

1954 823일, 독도에 접근하려는 일본 순시선을 총격전 끝에 격퇴한 뒤, 그해 1121에는 1,000t급 일본 순시선 3척 및 항공기 1대와 총격전을 벌여 역시 격퇴하였다. 이 전투로 일본 쪽에서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항의각서를 보내기도 하였다. 출처 - 두산백과

 

10. 한일협정(1965.06.)

 

독도 밀약

첫째, 독도는 앞으로 대한민국과 일본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론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둘째, 장래에 어업구역을 설정할 경우 양국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하는 선을 획정하고, 두 선이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 수역으로 한다.

셋째, 현재 대한민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의 건축이나 증축은 하지 않는다.

넷째, 양국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 나간다.

 

11. 신한일어업협정(1998) 

 






 

한일협정(1965.06.)은 진보의 공격 재료로 신한일어업협정(1998)은 보수의 공격 재료로 사용되는데 독도 영유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일관계를 해결하려고 하려다 보니 생긴 협정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결론

역사적 사실로 보면 안용복의 활약으로 인해 독도가 조선의 영토였음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러나 근대로 오게 되면 샌프란시스코 조약 협정문에서 독도가 빠진 점, 러스크 서한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한 점은 지금의 일본 우익이 적극적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됐다.

 

결국 1905년 전까지 독도는 우리 땅이었지만 일본에게 강제로 뺏긴 후 해방 후 다시 찾았어야 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전쟁에 골몰한 미국의 친일 정책으로 인해 애매하게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인해 독도 영유권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어서

독도가 만약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간다면? http://blog.naver.com/gpjm/10146647562